예술과 돈, 그리고 기술
예술은 나의 오래된 피난처와 같은 것이다.
회피하는 것이 몸에 베어있는 나는 있는 힘껏 나의 책임과 의무의 무게를 그림으로써 도피할 수 있었다.
나의 도피는 역동성을 띄어서, 그것이 마치 생산적인 것을 하고있는 것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가령, 공부라는 할 일을 회피하며 그림을 그려대지만 그것이 부지런한 손짓으로부터 시작되고 제법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오며, 그 결과가 단기적 노력을 통해 획득되기 때문이다. 중심 없이 넝쿨 마냥 남의 인정에 붙들려 살아가던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학 전까지 예술 활동을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창작을 하는 것이 곧 나를 의미했고 창작 없이는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1년 동안은 걱정 없이 즐겁게 학교생활을 한 것 같다.
점점 같은 양식의 작업을 반복하게 되면서 직업과 수입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막막했다. 예술 활동은 나의 자아와 동일한 것이라 늘 평가 받는 것이 두려웠고 이것을 누군가에게 판매한다는 것도 싫었다. 애초에 타인의 구매를 염두하고 창작을 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대학에서 결론 내렸던 것; 예술을 취미의 공간에 두고 수익은 다른 분야에서 만든다.
그렇기에 나는 그때 당시 떠오르는 과였던 컴퓨터학과를 복전했다. 애초에 내 자식같은 작업물을 팔 자신도 없고 내것이 옳다고 밀고 나갈 자기믿음도 부족했기에 '나'를 배제한 수업이 편했다. 당장 먹고살 진로를 3학년 2학기에 완전히 틀었기 때문에 꽤 늦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머지 시간은 차별점을 두기 위해 노력했다. IT 직종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과 다국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4학년 1학기 미국 교환학생을 가서 영어를 익혔고, 부족한 이론은 실무로써 빠르게 배우기 위해 중소기업 IT부서의 사원으로 1년간 근무했다. 이후 5학년 추가학기를 다니며 졸업 전시와 컴퓨터학과 복수 학위를 취득하게 되었다. 완전히 예술을 버리겠다는 극단적 선언을 제 선택에 맞게 나름대로 치열하게 보냈다.
결정을 후회하진 않지만 졸업 이후 IT 분야의 구직의 기간을 보내며 우연히 만난 <역행자>를 통해 한가지 생각의 변화는 있다.
'꼭 IT로만 돈 벌어야 할까?'
'예술이 상업성을 띄는 순간부터 그것은 저품질이 되는 것일까?'
나의 뇌는 완벽한 유전자의 오작동을 겪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나의 평판을 지나치게 생각하고 남들에게 거슬리지 않을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모두가 동의한다'는 불가능한 전제에 나를 끼워 맞추고 지냈다. 상업 예술은 질이 낮고 순수 예술만이 진정한 예술이라는 말에 늘 고개를 끄덕였다. 창작물을 만들어 주변의 한둘에게 보여주고 그들에게 두어마디의 인정을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며 나 스스로와 합리화 해왔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가이고 '때가 되면', 즉, '경제적 자유'를 얻게될 그 기약 없는 날이 오면 그때 나의 작품전을 대중에게 선보이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왔다. 그것이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데도 그렇게 방어하지 않으면 나의 자아가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대중에게 나의 창작물을 판매하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의식적으로 내가 만든 '진정한' 예술의 틀에서 벗어나보려한다.
'누군가 반드시 카피하고 나는 그들과 싸우게 될거야'
'누군가 내 작품이 싫다고 할거야'
'누군가는 내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비판할거야'
- 생존의 위협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며 현대 사회에서 실보다 득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해본다.